횡성의 장례문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자신이 자신의 일부가 덜어져 나간것처럼 충격을 받고 상실감을 느낀다.
장례는 사별의 아픔과 상실감을 처리하는 기술적인 행위이자, 남은 사람에게는 상실된 패턴을 재구조화함으로써
망자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임종[臨終]
한국의 상례[喪禮]에서는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을 임종이라 한다.
숨이 넘어갈 때까지 가족이 돌아가면서 임종을 한다.
사망시각을 정확하게 알아야 장례를 올바로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망시각에 따라 발인시각이나 하관 시각이 정해진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최대한 빨리 가까운 이웃에게 알려
도움을 청한다. 지난날에는 임종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효로 생각하였다.
고복[皐復]
'하늘과 땅에 고하다'
망자의 마지막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 행해지는 의식이다.
돌아가신 분의 속적삼이나 옷을 들고 북쪽 하늘로 향해 휘두르며
주변에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의식행위로 ‘00년 00월 00일 00시 00생 000씨 00 별세, 속적삼 가져가시오’라고 하늘에 고한다.
고한 후에 속적삼은 바구니에 담아서 영좌[靈座]에 두었다
상여가 나가고 나면 불을 놓아 태운다.
수시[收屍]와 염습[殮襲]
망자의 이별을 하늘에 고하고 나면 죽음을 뜻하는 북쪽으로 시신을 놓고 시신이 굳지 않도록 코와 귀 등에 구멍을 솜으로 막은 후 손과 발을
가지런히 묶어 망자의 몸을 정돈하는 수시를 한다, 수세라고도 한다.
염습은 수의를 입히고 몸 전체를 일곱 마디로 묶는 의식이다.
저승사자와 함께 49일 동안 7번의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영원한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천상의 세계, 49제는 무사통과를
염원하는 기도인 셈이다. 그러나 설사 망자가 가야 할 저승이 이미
정해져 있다 할지라도 염습할 때 고이 접어놓은 노잣돈만 있다면
보다 좋은 길을 갈수 있다고 믿었으니 이승에 대한 해학마저 느껴진다.
사자상[使者床]
‘잠시라도 더 이승의 시간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
망자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대접하기 위한 상을 사자상[使者床]이라고 한다. 저승사자는 세 명이라고 믿어 일반적으로 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 동전 세 닢과 술 석 잔을 차린다. 전통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안내하는 저승사자가 망자를 데리러 온다고 믿었다. 저승사자는 시직사자[時直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3명으로, 일명 ‘삼사자[三使者]’라고도 부른다. 삼사자는 망자[亡者]를 데리고 염라대왕에게 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망자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저승자사를 대접해야 했다. 그래서 초상난 집에서는 저승사자를 위한 제물을 차린다. 그 제물 올려놓은 상을 사자상[使者床]이라 부른다.
성복제[成服祭]
입관을 마치고 나면 상주들도 삼베로 만든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런데 이때 꼭 지켜야 될 몇 가지 절차가 있다. 반드시 맞상주부터 차례대로 상복을 입어야 하며 남자 상주들과 여자 상주들은 양쪽으로 나누어 맞절을 하고 대야에 담아놓은 물에 손을 씻은 후 상복을 입는데 남자 상주는 굴건 제복을, 안 상주와 여자 상주들은 흰 치마저고리에 머리에 짚으로 만든 띠를 두른다. 이렇게 상복 입기를 마치고 나면 관을 밖으로 모시는 토롱이 이어진다.
토롱[土壟]
입관을 마치고 나면 관을 밖으로 옮겨 얇게 판 땅에 임시로 모시는 토롱이 이어진다. 관을 운구할 때 마당에 엎어 놓은 박을 깨는 데 이는 하늘 문을 열고 황천길로 가야 할 때를 의미한다.
이승에서는 토롱으로 헤어짐을 나타내는 데 횡성에서는 흔히 퇴롱이라고 불리는 토롱은 좁은 집안에 손님을 모시기 어렵고 시신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임시 매장법이다.
상청[喪廳]
죽은 이의 영위[靈位]를 두는 영궤와 그에 따른 물건을 차려놓는 곳을
말한다. 궤연 혹은 영실[靈室]이라고도 한다.
길제[吉祭]를 마치고 신주를 사당에 모실 때까지
망자의 신주를 상청[喪廳]에 모신다.
조문[弔問]
죽은 이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을 말한다.
장례 절차 중 하관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지금도 이는 변함이 없다.
조문은 죽은 이에 대한 최상의 예의를 갖추고 고인의 안식을 기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도둠놀이
공동체적 삶을 살아 온 정금마을 주민들은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에 상여를 꾸며 발을 맞추며 한판 흐드러지게 놀아보는 대도듬이라는 상여놀이를 한다.
상도꾼들이 섭섭지 않게 사위와 딸이 수로가 떡,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대접하다 보면 어느새 망자의 허망한 인생을 읖조리던 소리는 상여소리가 되어 불씨와 함께 망자가 있는 황천길까지 훨훨 타오른다.
정든 세상 정든 가족을 영원히 떠나는 마지막 망자의 길이 호화롭고 떠들썩할수록 후손들에게 복이 온다고 믿었던 까닭에 대도둠놀이는 생활이 여유로운 집에선 꼭 해야 했던 우리 고유의 민족풍습이었다.
발인제
[發靷祭]
장지로 떠나기 전
한 평생 살아왔던 집과 땅에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발인제가
시작되면 상주들의 애달픈
곡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운상[运灵]
상여는 신을 부르는 요령 소리와 함께 고인이 가는 길에 잡귀를 막는
방상씨의 길 안내에 따라 장지까지 운반된다. 운구라고도 부른다.
상여가 장지까지 가는 동안 선소리꾼은 상두꾼들이 힘이 덜 들어가게
발을 맞추어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매기는데 상두꾼은 후렴으로 답을 한다.
이미 반은 저승사람이나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망자와의 영원한 이별 의식으로 불리워졌던 슬픔의 곡이 상여소리였다.
영여[灵舆]
영여란 말 그대로 영혼이 타는 수레이다. 여기에는 혼백 및 혼백상자, 신주, 향로, 영정 따위를 싣는다. 두명이 메듯이 앞뒤로 끈을 가위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는 가마채를 잡고 간다. 가마채가 허리 높이 정도 오기 때문에 ‘요여腰輿’라고도 한다.
만장[輓章]
만장은 만사[輓詞], 만시[輓詩]라고도 하여
평소 망자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여
그 마음을 담아 지은 이별의 글이다.
만장은 문장의 종류에 따라 만사와 만시로 구분되지만
굳이 따지지 않고 모두 만장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장 행렬의 규모는 고인의 사회적 지명도를 알려주기도 한다.
방상시[方相氏]
‘두개의 눈은 과거를 기억하고, 두 개의 눈은 미래를 본다’
방상시탈은 궁중에서 나례나 장례때 악귀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탈이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행차나 사신의 영접 등의 행사 때 사용되었는데,
붉은 옷에 가면을 쓴 방상시 4명과 각종 가면을 쓴 사람들이
때리기도 하고 불이나 색깔 등으로 위협하여 악귀를 쫓는다.
일종의 연극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런 의식은 나라의 큰 일을 앞두고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이었던 듯 싶다.
장례 때에는 발인 행렬의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묘지에 도착하면
시신이 들어갈 자리의 잡귀를 쫓는다. 이 때 사용한 탈은 종이와 나무로 만들어지는데 한 번 쓴 탈은 시신과 함께 묻거나 태워버린다.
이런 풍습은 중국 주(周)나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신라 5∼6세기경부터 장례 때 사용되었고,
악귀를 쫓는 의식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정종 6년(1040)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관[下棺]
방상시[方相氏]의 춤이 끝나면 광중에 횡대를 깔고 그 아래 파란색과 빨간색의
폐백으로 예를 올린다. 맏상주는 폐백을 받들고 절을 올리며 망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마지막 예를 다한다.
취토[聚土]
‘마지막 가는 길, 온기를 품은 흙을 내리다’
취토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광중을 메우기 전에 광중 네 모서리에 흙을 넣는 절차이다. 둘째, 하관 후 광중을 메우기 전에 상주가 옷자락에 흙을 싸서 영구 위에 던지는 절차이다. 셋째, 광중의 흙 빛깔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일이다.
회다지소리
가족들의 취토가 끝나면 회다지소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다지가 시작된다. 산에서는 나무 뿌리와 동물의 피해로 무덤이 잘 파헤쳐지곤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조상들은 흙에 회를 섞어 땅을 다졌다. 풍수지리설의 믿음에 따라
해로운 땅신을 단단하게 밟으므로 망자를 보호하려는 벽사의 의미로 행해진
회다지는 장시간의 고된 노동이었다. 때문에 느리고 장중하게 시작된 회다지소리는 고된 노동을 잊는 노동요의 호흡으로 빠르게 이어지며 ‘연회, 청회, 방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선소리꾼의 입을 통해 살아있는 후손과 이미 떠난 조상을 다시 공동체의 삶으로 화해시킨다. 어느새 죽음도 삶도 모두 사라지고 소리는 신명을 더해만 간다. 세상과의 이별이란 삶의 한 낮을 지나 하늘과 땅 사이의 긴 여행을 구름처럼 머물다
꿈처럼 떠나가는 것이다.
횡성회다지소리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강한 내세관[來世觀]을 품고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소멸하고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한다는 민족 고유의 의식이 들어있다. 간혹 해학적인 가사로 이승에서의 삶을 풍자하기도 하지만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도 하고, 저승에서 시작될 새로운 삶을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회다지소리는 유족들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상생의 소리라고도 한다.
이제 망자는 무거운 육신과 세속의 짐을 벗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편히 길을 떠났을 것이다.
반곡[反哭]
망자를 묻고 나면 신주를 써서 무덤 앞에서 제를
지낸 뒤,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여,
반곡을 ‘반혼’이라고도 한다.
자식들 중에 한 사람은 머물러서 광중의 흙을 메우고 봉분을 만들 때까지 살펴보게 한다.
봉분이 완성되면 상주들은 평토제라고도 불리는
봉분제를 지내는데, 이로써 망인은 이승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