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마을은 소리와 기억의 어울림으로
구성된 마을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는 사람을 따라온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악보가 어디 있고, 교육 과정이 어디 있냐고.
입에서 입으로, 소리에서 소리로, 몸짓에서 몸짓으로 이어온 역사와 문화이기에 정금 사람들만의 고유한 소리가 될 수 있었다.
정금리(鼎金里)는 동북쪽의 죽림산과 동남쪽으로 봉화산 그리고 서쪽의 정금산에 둘러싸인 산간 구릉지대로 「우밀」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의 지형이 우물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금리, 산전리, 하궁리를 합쳐 우밀권역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물 정(井)자와 금이 많이 난다고 하여 쇠 금(金)자를 써서 정금(井金) 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앞산의 이름인 정금산(鼎金山)이 솥을 걸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쇠낌 또는 정금리(鼎金里)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 산전리를 중심으로 정금리 등에서 금광과 은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확 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온 광부와 가족들로 인하여 산전리에서 정금리에 이르는 도로 옆으로 집들이 들어섰다. 1926년과 1938년의 기록에 정금리에는 5일장이 섰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 광산이 거의 폐광되면서 정금장도 쇠퇴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광산 일 때문에 이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고향이나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정금리 주민들은 광산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농사를 지으며 이웃의 애경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농사짓거나 장사지낼 때 부르던 소리 및 그에 따른 다양한 민속이
지속되어 현재 민속 활동을 하는 정금리 주민들에까지 전승되고 있다.
정금마을 구성원들은 마을의 민속을 어려서부터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마을에서 생활하며 부모나 선배로부터 보고, 들어서 익힌 민속들이 지속되어 현재 민속 활동을 하는 정금리 주민들에게까지 전승되고 있다.
정금마을에서는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강원도 및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1984년 제2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회다지선소리>로 출연하여 도대회 종합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를 <횡성회다지놀이>로 제목을 바꿔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정금리는 <회다지소리> 마을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전국의 여러 마을에는 지역의 ‘장례의식요’의 귀중함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대통령상 수상에 이어 <횡성회다지소리>는 1985년에 강원도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이어서 대통령의 특별하사금과 횡성군의 협조로 <정금민속관>을 건립하여 소중한 민속자료 등을 전시 및 보존할 공간을 확보했다.
아울러 정금마을은 1986년 정금마을이 회다지소리 전승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 <정금민속보존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횡성민속예술보존회>로 명칭을 바꿨고, 2009년에는 강원도로부터 <횡성회다지소리> 보유 단체로 공식 인정받아 <횡성회다지소리전승보존회>로 개칭하였다.
1995년 1월 정금마을은 문화체육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되어 향토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마을 입장에서는 활발하게 전승되는 민속뿐만 아니라 그동안 별 관심이 없는 민속 또한 활발하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